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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rrence April

복합리조트’를 개척한 샌즈그룹 셸던 아델슨 회장

지난 2001년 8월 마카오 정부가 카지노 시장을 개방했지만 라스베이거스 자본들은 ‘중국 리스크’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샌즈 그룹의 셸던 아델슨 회장은 과감하게 마카오에 ‘베팅’하면서 아시아 시장을 선점 하였다.

2002년 8월 ‘샌즈(金沙)마카오’를 착공해 2004년 5월 15일 개장한 샌즈는 칙칙하고 낮은 천장 분위기 일색의 마카오 카지노 시장에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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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베네시안 카지노 리조트. 

5층으로 된 샌즈마카오의 카지노 영업장은 수십 미터 높이의 천정과 화려한 조명, 수많은 가수와 무희들이 나와 노래와 춤을 제공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별천지와 같았다.

2억4000만 달러를 투자한 마카오 샌즈는 10개월 만에 원금을 모두 회수했다는 소식이 라스베이거스에 전해지자 MGM과 윈이 마카오에 투자를 시작했다. 언론과 카지노 업계에서는 샌즈 마카오의 대박소식을 듣고 ‘샌즈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자료에 따르면 아델슨 회장은 미국 보스톤에서 택시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 출신으로 가난한 택시 운전사를 아버지로 둔 탓에 그는 어려서의 기억은 피폐한 생활만 생각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가난 때문에 그는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하게 되었다.

12세에 그는 삼촌에게 200달러를 빌려 신문 가판대 사업을 시작한 것이 자수성가를 향한 첫 출발이었다. 이후 캔디 가게를 거쳐 아이스크림 판매업, 속기사, 모기지 브로커도 경험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업가가 되기 위한 비즈니스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화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더 성장한 뒤에는 투자 자문가, 여행사 사장, 벤처캐피털리스트로도 뛰었다. 기업회계와 부동산을 틈틈이 배운 그는 육군 병사로 근무하다가 제대한 뒤 뉴욕 월가에서 법원 속기사로 일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1960년 들어 비즈니스에 제법 안목을 넓힌 그는, 1960년대 초 뉴욕 월가에서 주식매매 컨설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이후 고향인 보스톤으로 돌아와 기업투자에 나서 수십 개 이상의 기업을 보유하였고, AITS라는 여행사에 주식투자를 하여 큰 수익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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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를 세계 최대 컨벤션 도시로 키운 셀던 아델슨 회장은 오늘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들었다.

당시 곧장 주식을 처분했으면 돈 방석에 올라앉을 뻔 했지만 계속 보유하고 있다가 1960년대 말에는 주식폭락으로 인해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인생의 평지풍파를 다양하게 경험한 그는 이번에는 보스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통해 재기를 노렸지만, 부동산 시장이 경기침체기에 접어드는 바람에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연이은 실패로 보통 사람 같으면 사업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찾기도 하겠지만 그는 재기를 노리며 새로운 사업구상을 한다.

이윽고 1971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컴퓨터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아델슨은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유지’라는 컴퓨터 잡지를 발행하는 작은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아파트 전시회에 참석한 아델슨은 아파트 관련 잡지사가 전시회를 주최한 사실을 알고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잡지사에서도 컴퓨터 전시회를 주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즉시 새로운 사업을 구상 하였다.

마침내 1973년 댈러스에서 그는 첫 컴퓨터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975년 잡지사 지분을 처분하고도 컴퓨터 전시회를 자신이 계속 주최하였다. 전시회를 통해 사업성공을 확신한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매사추세츠 주 니드엄에서 인터페이스그룹을 창업한다.

이 회사는 바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박람회로 유명한 ‘컴덱스쇼’를 시작한 곳이다. 그는 1979년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첫 컴덱스쇼를 개최하게 된다. 

컴덱스쇼는 이때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시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침 IBM과 애플컴퓨터 같은 글로벌 PC 브랜드들이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쇼를 계기로 세계적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컨벤션 사업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컴덱스쇼가 탄탄대로를 달리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인터페이스그룹의 순이익이 2억5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대성공을 이뤘고 아델슨은 컨벤션 분야의 1인자로 올라섰다.

1990년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쇼에는 전 세계 2200여개 회사에서 참여하고 관람객이 22만 명이 넘었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쇼에서 아델슨의 돈 버는 방법은 참가 업체에 제곱피트(가로 세로 30센티미터 면적)당 50달러를 참가 수수료로 받았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를 대여해준 호텔에게는 제곱피트 당 15센트를 내면서 매우 높은 고수익 비즈니스로 큰돈을 벌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컨벤션 사업으로 떼돈을 번 그는 미국 내 다른 도시와 유렵, 일본에서도 컴덱스쇼를 열면서 비즈니스 무대를 넓혀나갔다. 마침내 아델슨도 카지노사업 진출의 기회를 갖게 된다.

1988년 아델슨은 인터페이스 공동 투자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컨벤션센터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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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카지노는 스포츠 베팅 영업장을 대규모로 조성해 놓고 있다.

당시 참가수수료를 통해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알게 된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는 자신들에게 더 높은 대관료 지불을 요구하자 아델슨은 대안으로 컨벤션호텔 매입에 나섰다.

마침내 아델슨은 커크 커코리언이 소유하고 있던 샌즈호텔을 1억28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아델슨은 샌즈호텔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컨벤션 센터를 대폭 확장하고 인터페이스그룹 전용 전시관 건립에도 60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한다. 아울러 대형 쇼핑몰도 추가해 새로운 샌즈호텔을 만들어 이듬해인 1989년 개장했다.

샌즈호텔 재개장 시에도 아델슨은 카지노 사업보다 컴덱스쇼에 관심이 많았다.

1995년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컴덱스쇼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손 회장은 8억6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컴덱스쇼 판권을 매각했다. 당시 거래를 통해 아델슨은 5억 달러를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이어 아델슨은 뉴욕 월가 자본을 유치해 라스베이거스 최초의 대형 컨벤션센터인 ‘샌즈엑스포센터’를 개관했지만 예상보다 수익이 나지를 않자 카지노리조트사업(IR)에 본격 나서게 된다.

1991년 두 번째 부인 미리엄과 결혼한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영감을 얻었다. 

사물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 그는 신혼여행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라스베이거스에 재현하기로 하고 1996년 라스베이거스 샌즈호텔을 철거한 뒤 베네치아호텔을 건립하였다.

‘도시재생사업’ 차원의 베네치안 리조트에는 3000실의 호텔 객실, 대형 회의와 전시가 가능한 대형 컨벤션센터, 쇼핑몰, 카지노가 있으며, 물길을 만들고 뱃사공이 노래를 부르며 곤돌라를 운행하도록 했다.

15억 달러가 투입된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테마파크 호텔& 리조트는 1999년 개장과 동시에 라스베이거스의 주목을 받았고, 관광객들을 열광시켰다.

아델슨은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을 통해 ‘도시 재창조’의 신화를 쓴 인물이 되면서 동시에 컨벤션과 카지노를 결합한 창의적 사업가라는 애칭을 들었다. 

주중에는 이곳에서 회의와 전시를 하고 주말에는 카지노와 레저로 일주일 내내 사람들이 찾는 복합리조트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혁신적인 경영인으로 그를 평가했다.

아델슨 회장이 절반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샌즈 코퍼레이션’은 세계 최대의 카지노, 컨벤션, 전시 업체로 알려졌다.

베네치아가 대성공을 거둔 뒤 마카오가 2001년 카지노 시장을 개방한다고 밝히자 가장 먼저 마카오에 깃발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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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파리시앵 카지노리조트 야경. 

2억 4000만 달러를 투자한 ‘샌즈 마카오’가 성공하자 곧장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신도시지역인 코타이 지구에 7억 달러를 쏟아 부어 제2의 베네치아를 2007년 개장했다.

이곳에는 스위트룸 호텔 3000객실, 300개의 쇼팽센터, 100여개의 레스토랑, 1만5000석의 대형 회의와 공연이 가능한 컨벤션센터,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옮겨온 것 같은 뱃길과 곤돌라를 운행시켰다.

또한 여세를 몰아 코타이 지구에 포시즌 호텔에 이어 ‘샌즈 코타이 센트럴’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콘래드, 홀리데이 인, 쉐라톤 호텔 등 3개의 5성급 호텔이 카지노와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16년 9월에는 샌즈 코타이 센트럴 인근에 파리 에펠탑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파리지앵 호텔리조트를 개장했다.

마카오 코타이 지구에 샌즈그룹이 투자한 돈은 120억 달러가 넘고 있으며, 호텔 객실만도 2만실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아델슨 회장은 싱가포르에도 35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화려한 ‘마리나베이 샌즈’ 카지노 리조트를 개장함과 동시에 아시아에서 카지노리조트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CEO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아델슨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대한민국 카지노리조트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서울, 부산, 군산 새만금 등지에 오픈카지노를 조건으로 5조~10조 원 투자를 약속하면서 강원랜드를 위협하였다.

‘카지노의 제왕’으로 불리는 그는 현재 일본이 카지노 시장을 개방하자 일본으로 달려가 100억 달러 투자를 제안하며 도쿄나 오사카 진출을 벼르고 있다.

아델슨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뛰어든 도널드 트럼프에게 거액을 후원했고 당선 후에도 56억 원(500만 달러)을 기부해 최고액 기부자로 트럼프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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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던 아델슨 샌즈그룹 회장. ⓒ위키백과

유태인 출신 가운데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가 된 그는 그러나 부의 세습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아들 둘에게 용돈을 현금대신 포인트로 주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친구들과 관계를 잘 맺으면 포인트를 주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포인트를 삭감하는 식이다. 

아내에게는 마약 중독자 재활과 연구를 위한 클리닉을 운영토록 하는 등, 박애주의자로 인정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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