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전락원 회장의 워커힐 카지노

국내 카지노 산업을 거론하는데 있어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를 빼놓을 수 없다.

전락원 회장에 의해 탄생된 워커힐 카지노는 대한민국 ‘카지노 역사’를 써온 곳이기 때문이다.

워커힐호텔은 5.16 군사혁명 이후,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김종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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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초기 워커힐 카지노 전경. ⓒ파라다이스

5.16 혁명세력의 실세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1961년 7월 멜로이 유엔군 사령관으로부터 “한국에 적당한 위락시설이 없어 연간 3만 명 이상의 미군들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는 말을 듣고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건의해 워커힐 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워커힐호텔의 명칭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미국의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종필 부장은 워커힐호텔 부지를 한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서울 광진구 아차산 일대를 선택했다.

아차산 일대 60만㎡(18만 평)의 토지를 수용한 중앙정보부는 2만 여명의 공병부대 병력, 4000여 대의 군 장비, 1만 8000여 명의 육군 형무소 복역수가 워커힐 호텔공사에 동원되었다.

1963년 4월 워커힐호텔이 개장하자 예상했던 대로 미군들이 넘쳐났다. 첫 VIP 고객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방한했다.

당시 워커힐호텔은 국영기업인 국제관광공사가 운영했다. 국제관광공사도 중앙정보부에 의해 탄생된 공기업이다.

1967년 8월 인천 오림포스 호텔에서 주한 외국인들의 오락시설로 개장한 카지노가 성공을 거두자 워커힐호텔을 운영하는 관광공사도 그해 가을 카지노 설치를 준비했다.

그러나 관광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카지노 사업은 의욕만 가지고는 결코 성공할 수 있는 호락호락한 사업이 아니었다.

1968년 워커힐 카지노 개장에 전락원 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토리가 장철희 전 한국관광협회장의 회고에서 드러나고 있다.

<외화획득을 위해 중앙정보부에 의해 워커힐호텔이 건립되고, 국제관광공사가 운영을 했지만 적자에 허덕였다. 김일환 당시 관광공사 총재가 장철환 워커힐 외국부장인 나에게 워커힐에 외국인 전용카지노를 개설해야 하겠으니 전락원 회장에게 교섭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당시 인천 오림포스호텔 카지노는 경영이 생각보다 신통치를 않아 고전하고 있던 상황이라 전 회장은 워커힐 카지노 개설에 나설 수가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김일환 총재는 정부방침이니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동의를 받아오라’고 호통을 쳤다. 

결국 나(장철환 외국부장)는 수차례에 걸쳐 전락원 회장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워커힐 카지노 개설에 대한 협조를 약속 받았다. 워커힐 카지노에서 벌어들인 달러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요긴하게 활용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락원 추모집 ‘드높은 이상향을 꿈꾼 도요새’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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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파라다이스 비치호텔 개장식에 참석한 전락원 회장. ⓒ파라다이스

워커힐 호텔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워커힐 카지노는 전락원 회장에 의해 탄생했고 30년 이상 대한민국 카지노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은 2002년 그룹 창립 30주년을 맞아 ‘파라다이스그룹 30년사’를 펴냈다. 전락원 회장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묻어 있는 30년사에는 워커힐호텔 카지노 개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

<정부는 경제개발 재원의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진흥과 관광산업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런 정부방침에 따라 1967년 말에 관광공사에서 워커힐호텔에 카지노 개설허가를 요청하였다.

오림포스 카지노는 국내 최초로 개설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새로 개장될 워커힐 카지노에는 견줄 바가 못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전락원 회장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청사진을 펼쳐 보이기기 위해서 사업성이 좋은 워커힐 카지노 개설에 전력투구를 하기로 했다. 

그의 사교적 역량과 경영능력을 발휘한 덕분에 워커힐호텔의 카지노 개설 준비는 빈틈없이 이루어져 관광공사 소유의 워커힐호텔에 동양 굴지의 카지노를 운영하게 되었다.

1968년 3월 워커힐호텔 카지노 운영을 위해 ‘오림포스관광호텔 워커힐지점, 콘티넨탈 카지노클럽’이라는 상호명으로 법인등록을 마쳤다.

오림포스호텔측의 카지노 개장준비요원이 선발되었고, 이 요원들에 의해서 워커호텔 지하 1층 200여 평 면적에 카지노 시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오림포스호텔에서의 카지노 개설 경험이 있고 관광공사측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시설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68년 초부터 시작된 카지노 시설공사는 불과 3개월여 만에 대부분 마무리가 되었다.

3월 5일 정부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아 워커힐호텔 카지노가 개장하게 되었다. 개장 초기 서울에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관광시설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워커힐카지노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명소로 각광받았다. 파라다이스그룹 30년사에서>

인천 오림포스호텔 카지노에 이어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까지 성공적인 개장과 영업이 이뤄지자 제주도에서도 카지노 운영 요청이 들어왔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재일교포 재력가인 김평진씨가 제주도에 최초로 세운 호텔이 서귀포호텔이었다. 

서귀포호텔은 1968년 9월 개관과 동시에 제주도 최고의 초현대식 호텔로 평가받으며 일본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본인 관광객들로 호텔영업이 일취월장하자 김평진 사장이 전락원 회장에게 카지노 개설과 운영의뢰를 요청했던 것이다.

전락원 회장은 서귀포호텔 부대사업장으로 ‘한라개발 그린아일랜드 카지노클럽’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국내 3번째 카지노를 개설토록 했다.

이후 전락원 회장에 대한 카지노 업계의 평가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

지금은 세계 굴지의 글로벌 카지노리조트 기업으로 성공한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은 1969년 하반기 1단계 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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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카지노 영업장의 최근 모습. ⓒ파라다이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1시간 거리의 해발 1800미터 고원지대에 1단계 호텔을 건립한 림고통 겐팅 회장은 전락원 회장에게 호텔과 카지노 사업 경영참여를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전락원 회장은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의 모태가 된 겐팅하이랜드 호텔과 카지노에 이사 자격으로 참여해 성공개장에 큰 기여를 했다.

말레이시아 겐팅 참여 이후 전락원 회장은 아프리카 케냐(1973년), 미국 마이애미 선상카지노(1975년)사업 참여를 제안 받을 정도로 그의 카지노 경영 능력을 해외에서 더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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